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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용수

이용수

전 축구 선수. 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며, 우리 학교의 체육학과 교수이다. KBS 축구 해설위원이기도 하다.

몇 명 안 되는 서울대학교 출신 전직 K리그 선수이며, 선수 생활을 마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 수료, 미국으로 유학가서 스포츠 생리학을 전공한 명실상부한 엘리트 출신 해설위원이다. 축구 해설은 KBS에서 1996년부터 시작.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용수 교수가 정몽준 회장의 축구협회 운영을 독선적이라고 자주 비판했기 때문에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2000년 올림픽 8강 진출 실패 이후에 정몽준 회장이 직접 찾아가서 영입했다고. 2002년 월드컵을 대비한 단기처방으로 외국인 감독 선임을 추진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히딩크. 감독 선임 이후에도 축구협회와 히딩크 간에 소통 창구 역할을 했으며 그 덕분인지 히딩크와는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대표팀 구성과 운영에 감독의 권한을 절대적으로 보장해주고 조용히 뒤에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역대 기술위원장중에 제대로 일한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선수선발, 훈련일정, 평가전 상대 등등 온갖 문제를 가지고 벌어지던 국대감독과 기술위(협회)의 대립이 이용수 기술위원장 시절에만 없었다. 이런 성향때문인지 2011년 이회택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과 조광래 감독간의 공개 충돌때도 이용수 교수는 기술위의 현장간섭이 문제라고 협회를 비판했다.

2002년 월드컵 직후 축구협회 인사들과의 갈등으로 사퇴하고 KBS해설위원으로 복귀했다. 히딩크, 정몽준 그리고 축구협회 이후에 정몽준-조중연 라인이 축구협회를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축구협 회장 선거때마다 비주류 후보들을 지지하고 있다. 조중연이 물러난 이후에 다시 정씨 일가인 정몽규 회장 체체가 들어선 이상 축구협에서 일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듯 한게 지배적이지만 정몽규 회장이 여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뽑겠다고 선언한 만큼 야권인사중 한명인 그를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속 자문기관인 미래전략기획단 단장으로 취임했다.

특출나게 튀지는 않지만, 차분한 스타일의 해설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서기철 아나운서와의 조합은 KBS 축구중계의 황금조합이라 할만 하다. 근데 요즘 해외축구 중계를 즐겨보는 시청자라면 다소 심심한 느낌 때문에 조금 거북해할 수도 있다. 나이가 많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호평을 받는듯 하나, 젊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톤 자체가 상당히 쳐지는 해설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편. 그나마 8시나 10시 경기는 괜찮은데… 새벽경기라면, 경기 보다가 어느순간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결정골이 터졌을때도 평소와 다름없는 다소 심심한 톤으로 해설을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잠용수.공무원 해설 그러나 전 연령층을 놓고 보면 가장 무난한 해설자 중 한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게 젋은 층에서는 소리 지르는 중계를 원할지 모르지만-예를 들어 최승돈-한준희- 엄연히 국가대표 경기의 절반 이상을 시청하는 중장년층은 이러한 소리 지르는 젋은 해설들을 방정맞다며 싫어한다. 결국 주 시청자층이 변하지 않는 이상 수면해설은 계속 된다는 이야기. 거기에 방송사가 공영방송인 KBS이다 보니까 대체로 스포츠 중계에서도 점잖고 보수적인 해설자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렸하다. 명대사는 “보세요, 좌우측 측면에서…”

다만 초심을 잃었는지 2012년 들어서 해설 퀄리티가 부쩍 떨어져 K리그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쉽게 말해 공부 안한다는 것. 일례로 최강희호 9월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국내파 선수들이 스플릿 시스템의 여파로 체력이 고갈된 징후를 여실없이 노출했는데도, 이런 분석은 전혀 없이 90분 내내 '왜 안뛰냐'는 식으로 애먼 선수들을 닥달했다. 답답하면 니가 뛰던지

2013년 7월 11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보호관찰 기간에 봉사활동을 50% 이상 성실히 수행하고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선수들의 보호관찰 기간을 절반 이상 경감한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에 승부조작 선수들의 복귀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여 불난 집에 부채질 팬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결국 대한축구협회에서 8월 19일 징계 경감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2014년 7월 24일 황보관의 후임으로 다시 기술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인물/이용수.txt · 최종 편집: 2016/12/20 09:46 (바깥 편집)